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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를 읽고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세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을 앞두고 쓴 것임을 고린도후서 12, 13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앞에 보낸 편지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 한 바 있습니다.

고린도전서가 성도들의 구체적인 신앙생활과 삶에대한 지침의 형식이라면 고린도후서는 다분히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감정과 사생활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바울이 목숨을 바쳐 전했던 그리스도 복음의 문이 드로아에서 열렸음에도 작별 인사를 고하고 고린도교회 소식이 궁금해서 디도를 만나러 아가야 지방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전파를 마다하고 디도를 만나러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사도성 존립에 대한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일부 성도들은 고린도후서 후반부에 기록처럼 바울의 언변이 소위 다른 사도라고 불리우는 이들에 비해 뛰어나지 못했던 점 등을 이유로 주님이 당신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열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디도를 통해 이러한 상황들이 진정되고 잘 수습됐다는 소식을 받았음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기독교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린도교회는 그처럼 바울에게 중요한 교회였을까요? 그냥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에게해 주변 지도를 펼쳐놓게되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갑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2년 정도, 에베소에서 3년 정도 사역합니다. 에게해는 고린도와 에베소 사이에 위치한 바다입니다.

에게문명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지중해의 항공모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크레타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합니다. 크레타 문명의 모체가 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린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웃한 아테네의 문명권에 속하면서 호메로스의 서사시속에 나오는 그리스의 신들의 이야기를 익히 알았을 것입니다. 바람기 많은 제우스의 머리속에서 태어났다는 아테나의 여신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관문인 고린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적인 도전정신이 뛰어났던 고린도 항구의 사람들은 바울로 하여금 예민한 사역을 하게 만듭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헌금도 받지않고 마케도니아로부터 공급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쩌면 바울에게 고린도교회에 대한 복음전파는 헬레니즘인 에게문명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뉴욕에 20년 살면서 드는 생각은 이곳은 고린도처럼 에게문명이 아닌 자본주의 문명을 인간의 깊은 의식속에 심어주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뉴욕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헬레니즘 문명을 지나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 헤브라이즘으로 녹여냈던 바울처럼 지금 온세상을 하나의 밧줄로 묶고있는 자본주의의 본산 뉴욕에서 바이블의 정신을 다시 선포하라는 그분의 뜻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뉴욕은 이제 한반도의 미래와 긴밀한 연결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성경을 펼쳐서 과거에 역사했던 그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뉴욕에서만이 아닌 한반도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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